뇌출혈 뒤 몇 달이 지나자 오른손이 제 뜻과 상관없이 주먹을 쥐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손바닥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고, 왼손으로 하나씩 펴 주지 않으면 펴지지 않았어요. 재활의학과 선생님이 경직 치료로 보톡스 주사를 이야기하셨을 때, 저는 미용 주사로만 알던 그 이름이 낯설었습니다. 처음 주사를 맞던 날부터 몇 주 동안 제 손에 일어난 변화를,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과 가족분들께 담담히 나누려 합니다.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니 제 이야기는 한 사람의 경험으로만 읽어 주세요.

주먹이 저절로 쥐어지던 오른손

처음에는 힘이 돌아오는 줄 알고 기뻤습니다. 축 늘어져 있던 손가락에 뭔가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힘은 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손가락이 안으로만 말리고, 손목이 꺾이고, 팔꿈치까지 구부러져 가슴 쪽으로 붙었어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빨갛게 자국이 남는 날도 있었습니다. 소매에 팔을 넣는 일조차 아내 손을 빌려야 했고, 손바닥 사이에 땀이 차서 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힘이 돌아온 게 아니라는 말
재활치료 선생님은 그게 경직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뇌가 다친 뒤 근육에 힘을 빼라는 신호가 잘 전달되지 않아 근육이 계속 긴장해 있는 상태라고요. 경직이 심해지면 관절이 굳어 버릴 수 있어서 미리 관리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힘과 경직이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날이 춥거나 피곤하거나 긴장하면 경직이 더 심해진다는 것도 지내면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경직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경직은 힘이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재활의학과에서 들은 보톡스 이야기
스트레칭과 보조기로 버티던 어느 날, 진료 때 선생님이 보툴리눔 주사를 권하셨습니다. 굳은 근육에 약을 넣어 지나친 긴장을 일시적으로 풀어 주는 치료라고 하셨어요. 근육을 영구히 고치는 것이 아니라, 풀린 기간 동안 운동과 스트레칭을 더 잘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주사만 맞으면 손이 다 나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어요. 그 솔직한 설명이 오히려 믿음이 갔습니다. 저는 아내와 며칠 상의한 뒤 한번 해 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주사 전날 밤의 걱정
결정은 했지만 주사 전날 밤에는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독소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혹시 남은 힘마저 빠져 버리면 어쩌나 싶었어요. 아내는 궁금한 걸 다 적어 가서 선생님께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사 뒤에 샤워나 외출은 해도 되는지, 운동은 언제부터 하는지, 어떤 증상이 생기면 연락해야 하는지를 메모했습니다. 질문을 적고 나니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근육이 얼마나 굳었는지 재는 검사

주사를 맞기 전에 경직 정도를 평가했습니다. 선생님이 제 손목과 손가락, 팔꿈치를 천천히 또는 빠르게 펴 보며 어디서 얼마나 저항이 걸리는지 확인하셨어요. 경직을 단계로 나누는 척도가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주사할 근육과 양을 정한다고 하셨습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려면 뇌졸중 후 팔 경직이면서 정해진 정도에 해당해야 하고, 주사 간격도 최소 석 달은 떨어져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한 기준과 비용은 병원마다 진료 전에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
주사를 맞던 날

진료실 침대에 누워 오른팔을 베개 위에 올렸습니다. 선생님은 초음파로 근육 위치를 확인하면서 팔뚝 몇 군데에 가는 바늘을 넣으셨어요. 따끔한 느낌이 몇 번 지나가고, 생각보다 금방 끝났습니다. 바늘이 들어갈 때마다 손가락이 움찔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제 왼손을 잡고 있다가 끝나자 괜히 웃으며 이게 다냐고 물었어요. 주사 부위가 조금 뻐근한 것 말고는 그날 특별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전날 적어 간 질문에도 선생님이 하나하나 답해 주셔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첫 사흘은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주사를 맞은 뒤 매일 아침 손을 펴 봤지만 사흘 동안은 그대로였습니다. 혹시 주사가 안 듣는 몸인가 싶어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선생님이 효과는 며칠에서 몇 주에 걸쳐 서서히 나타날 수 있다고 하셨던 말을 몇 번이고 떠올렸습니다. 아내는 기다리는 것도 치료라며 제 손을 주물러 주었습니다. 그 사흘이 꽤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손 언제 펴지느냐고 물을 때마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고 답했지만, 사실 그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두 주쯤 지나 펴진 손가락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아침에 손가락이 덜 말려 있는 걸 느꼈습니다. 두 주쯤 지났을 때는 왼손으로 펴 줄 때 걸리던 뻣뻣함이 확실히 줄었다고 저는 느꼈어요. 손바닥을 씻을 때 손가락 사이에 물이 닿는 감각이 반가웠습니다. 다만 제 뜻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힘이 생긴 건 아니었습니다. 굳은 문이 조금 열렸을 뿐, 그 문을 지나가는 건 결국 제 몫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침마다 손을 억지로 펴던 시간이 줄어든 것만으로 하루의 시작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주사보다 중요했던 스트레칭 숙제

선생님은 근육이 풀린 이 기간을 놓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루 몇 번씩 왼손으로 오른손 손가락과 손목을 천천히 끝까지 펴서 버티는 스트레칭을 했어요. 식탁에 손바닥을 펴서 올리고 몸무게를 살짝 실어 누르는 연습도 했습니다. 작업치료 시간에는 컵을 잡았다 놓는 연습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주사 덕분에 스트레칭이 덜 아파서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트레칭을 한 날과 거른 날의 저녁 손 상태가 달라서,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습니다.
보조기와 밤 자세
밤에는 손을 편 상태로 고정하는 보조기를 찼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해서 자다가 몇 번이나 풀었는데, 아침에 손이 다시 말려 있는 걸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잘 때 오른팔을 베개 위에 펴서 올려 두는 것도 습관으로 만들었습니다. 낮 동안 무심코 팔을 가슴에 붙이고 있지 않은지 아내가 수시로 봐 주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오른팔을 쿠션 위에 펴 두는 자리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관절이 굳지 않게 하는 이야기는 관절 구축 예방, 집에서 하는 재활 스트레칭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런 증상엔 바로 병원에 연락하세요
주사 뒤 주의할 점도 들었습니다. 물이나 음식을 삼키기 어렵거나, 숨이 차거나, 말이 갑자기 어눌해지거나, 주사하지 않은 곳까지 힘이 빠지면 바로 병원에 연락해야 한다고요. 주사 부위가 심하게 붓거나 열이 나는 것도 알려야 할 신호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주의사항 종이를 냉장고에 붙여 두었습니다. 주사 뒤 며칠은 몸이 평소와 다른지 아내와 함께 저녁마다 짧게 점검했습니다. 뇌졸중 증상이 새로 생긴 것 같다면 망설이지 말고 119에 연락하셔야 합니다.
아이들이 손바닥에 그려 준 것

손이 조금 펴지자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제 손바닥을 들여다봤습니다. 늘 주먹 안에 숨어 있던 손바닥을 처음 제대로 본 거예요. 셋째가 사인펜으로 손바닥에 웃는 얼굴을 그려 주며 아빠 손이 웃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줄을 서서 별과 하트를 그렸어요. 그날 밤 그림을 지우기 아까워 한동안 손을 씻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그 손바닥을 사진으로 남겨 두었는데, 지금도 힘든 날이면 꺼내 봅니다.
다음 주사를 기다리며
몇 달이 지나면 주사 효과는 서서히 줄어든다고 들었고, 저도 실제로 손이 다시 조금씩 뻣뻣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음 진료 때 경직 정도를 다시 평가받고 추가 주사를 상의하기로 했어요. 건강보험이 인정되는 횟수와 기간에도 제한이 있다고 들어서, 언제 맞는 것이 좋을지 선생님과 함께 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주사가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허무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해 둔 스트레칭과 연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주사는 시간을 벌어 주고, 그 시간을 채우는 건 매일의 연습이었습니다.
마치며
경직 보톡스는 제게 기적의 주사가 아니라 다시 연습할 수 있는 틈을 열어 준 치료였습니다. 같은 주사를 맞아도 몸 상태와 경직 정도에 따라 느끼는 변화는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손이나 팔이 점점 굳어 간다면 혼자 참지 말고 재활의학과에서 경직 평가를 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주사 뒤에는 꼭 스트레칭과 연습을 함께 이어 가세요. 굳은 손이 조금 펴지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저는 아이들 그림이 그려진 손바닥에서 배웠습니다.
확인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 이 글은 저의 경험이며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경직 치료와 주사 여부는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진찰과 상담을 받아 결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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