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출혈로 쓰러지고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을 때, 저는 아내 이름을 불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제 입가에 귀를 대고 몇 번이나 다시 물었어요. 제 귀에는 분명한 말이 남들에게는 웅얼거림으로 들렸던 겁니다. 오른쪽 팔다리만큼이나 저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뭉개진 발음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발음을 되찾으려 연습한 기록을, 같은 답답함을 겪는 분들과 가족분들께 나누고 싶어 적어 봅니다.
아이 이름이 입 안에서 흩어졌습니다
퇴원 무렵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아이들 이름을 부를 때였습니다. 다섯 아이 이름을 차례로 부르는데 받침이 사라지고 모음이 섞여서 누구를 부르는지 알 수 없었어요. 막내는 고개를 갸웃하며 아빠가 뭐라고 했느냐고 엄마에게 되물었습니다. 그 작은 질문이 가슴에 오래 박혔습니다. 말을 해도 닿지 않는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외로웠습니다.
구음장애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제 상태를 구음장애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머릿속에 또렷한데, 입술과 혀, 목의 근육이 약해지고 조절이 안 돼 발음이 흐려지는 것이라고요. 말을 이해하거나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 어려운 실어증과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두 가지가 함께 오는 분도 있어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이셨어요. 이름을 알고 나니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줄었습니다.
언어치료실의 첫 평가

재활병원에서 언어치료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아 소리를 길게 내 보게 하고, 입술을 오므렸다 펴고, 혀를 좌우로 움직여 보게 하셨어요. 오른쪽 입꼬리가 덜 올라가고 혀가 한쪽으로 쏠린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숨이 짧아서 문장 끝으로 갈수록 소리가 작아진다는 것도 지적받았습니다. 제 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처음으로 객관적으로 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거울 앞 입술과 혀 운동

숙제는 매일 작은 거울 앞에서 입 운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입술을 쭉 내밀었다가 옆으로 크게 웃는 모양 만들기, 볼에 바람을 넣고 버티기를 반복했어요. 혀로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핥고, 입꼬리 양쪽을 번갈아 찍는 연습도 했습니다. 거울을 보면 오른쪽이 늦게 따라오는 게 눈에 보여서 속상했지만, 덕분에 어디를 더 써야 할지 알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오 분만 해도 턱과 혀가 뻐근했습니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 두 번으로 나누어 짧게 하기로 했습니다.
숨부터 길게

선생님은 발음보다 먼저 숨을 다듬자고 하셨습니다.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코로 숨을 들이마신 뒤 아 소리를 최대한 길고 고르게 내는 연습을 했어요. 처음에는 몇 초 만에 소리가 떨리며 꺼졌습니다. 배에 손을 얹고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느끼며 하니 조금씩 길어졌습니다. 숨이 받쳐 주니 문장 끝까지 목소리가 살아 있는 날이 늘었습니다.
천천히, 끊어서 말하기
제 버릇은 말이 막힐수록 더 빨리 쏟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한 번에 두세 단어씩 끊어서 천천히 말하라고 하셨어요. 오늘은, 학교에서, 뭐 했어, 이렇게 쉼을 넣어 말하니 확실히 알아듣기 쉬워졌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속도가 붙을 때마다 속으로 천천히라고 되뇌었습니다. 말을 느리게 하는 것이 오히려 대화를 빠르게 한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입을 크게, 과장되게
또 하나의 요령은 입 모양을 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 우, 에, 오를 할 때 턱과 입술을 평소보다 두 배쯤 크게 움직였어요. 거울 속 제 얼굴이 우스꽝스러워서 혼자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입을 크게 벌릴수록 모음이 또렷해지는 게 제 귀에도 들렸습니다. 지금도 중요한 말을 할 때는 입을 크게 여는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어려운 소리부터 하나씩
제게 특히 어려운 소리는 혀끝을 쓰는 소리와 입술을 붙였다 떼는 소리였습니다. 바, 파, 마를 반복하며 입술을 단단히 붙였다 떼고, 다, 타, 나로 혀끝을 윗잇몸에 정확히 대는 연습을 했어요. 그다음에는 가, 카처럼 혀 뒤쪽을 쓰는 소리를 섞어 순서대로 빠르게 반복했습니다. 소리가 익숙해지면 그 소리가 들어간 낱말, 짧은 문장 순으로 넓혀 갔습니다. 하루에 한 소리씩만 집중한 날이 오히려 진도가 잘 나갔습니다.
제자리걸음 같던 몇 주
연습을 시작하고 처음 몇 주는 나아지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데 녹음을 들어 보면 어제와 오늘이 똑같았어요. 괜한 헛수고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연습 노트를 덮어 버린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근육이 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며 몇 주 단위로 비교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하루하루가 아니라 달력 한 장 단위로 보니 조금씩 달라진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휴대전화 녹음이 알려 준 것

어느 날 선생님이 제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제 귀로 듣던 목소리와 녹음된 목소리는 전혀 달랐어요. 스스로는 또렷하다고 믿었던 문장이 녹음에서는 뭉개져 있어서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그날부터 매주 같은 문장을 녹음해 두었고, 몇 주 전 녹음과 비교하면 조금씩 나아진 게 분명히 들렸습니다. 그 작은 차이가 연습을 계속할 힘이 됐습니다.
이런 신호엔 바로 병원으로
발음이 좋아지다가도 갑자기 말이 전보다 확 어눌해진 날에는 절대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얼굴 한쪽이 새로 처지거나 팔다리 힘이 더 빠지거나 심한 두통이 함께 온다면 곧바로 119에 연락해야 합니다. 물이나 음식을 삼킬 때 자주 사레가 들리거나 목소리가 젖은 듯 가르랑거리면 삼킴 평가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피곤해서 발음이 흐려지는 것과 새로 나빠지는 것은 다르니, 헷갈릴 때는 의료진에게 물어보세요. 저희 가족은 이 기준을 냉장고에 붙여 두었습니다.
피곤한 날은 말도 지칩니다
연습을 하며 알게 된 것은 제 발음이 컨디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을 설친 날이나 오후 늦게는 아침보다 훨씬 뭉개졌어요. 그래서 중요한 통화나 대화는 되도록 오전에 하려고 했습니다. 지친 날 억지로 연습하면 오히려 좌절감만 커져서 과감히 쉬었습니다. 말도 근육을 쓰는 일이라 쉬어야 한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가족과 정한 대화 규칙
아내와 아이들과 몇 가지 약속을 정했습니다. 제가 말할 때는 중간에 대신 말해 주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어요. 못 알아들었을 때는 알아들은 척하지 말고 어느 부분이 안 들렸는지 물어봐 주기로 했습니다. 시끄러운 텔레비전을 끄고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아빠 차례라며 조용히 시키는 모습에 몇 번이나 울컥했습니다.
잠자리 동화책 읽기

가장 즐거운 연습은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쪽을 읽는 데도 숨이 차고 발음이 엉켜 아이들이 킥킥 웃었어요. 그래도 아이들은 매일 밤 책을 들고 와서 아빠가 읽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반복해서 읽은 책은 문장이 입에 붙어 점점 매끄러워졌습니다. 연습이라기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우리 가족의 의식이 됐습니다.
전화벨이 더는 무섭지 않습니다
한동안 저는 전화가 오면 아내에게 휴대전화를 넘겼습니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상대가 제 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두려웠어요. 연습을 몇 달 이어 가던 어느 날, 택배 기사님과 통화를 끝까지 혼자 해냈습니다. 짧은 통화였지만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르는 번호도 조금 긴장하며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못 알아들으시면 천천히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먼저 말하는 요령도 생겼습니다.
지금 제 발음은
솔직히 지금도 예전 목소리로 완전히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빠르게 말하거나 피곤할 때는 여전히 받침이 흐려지고 되묻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아이들 이름은 이제 또박또박 부를 수 있습니다. 막내가 한 번에 뒤돌아볼 때마다 연습했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완벽한 발음보다 전해지는 말이 목표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마치며
발음이 뭉개졌을 때 가장 힘든 건 소리보다 마음이었습니다. 말을 줄이고 숨고 싶었지만, 매일 조금씩 입을 움직인 시간이 다시 가족과 이어지는 길을 열어 줬어요. 지금 같은 답답함 속에 계신 분이라면 혼자 연습하기보다 언어치료 선생님께 평가를 받고 맞는 방법을 찾으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곁의 가족에게는 끝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그 기다림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됩니다.
확인처: 복지로, 보건복지부 (제도와 수치는 해마다 바뀌니 신청 전 최신 안내를 확인하세요)
※ 이 글은 저의 경험이며 진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발음이나 말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면 재활의학과 전문의나 언어재활사의 평가와 상담을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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