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활·운동

퇴원 후 첫 외출, 계단과 버스 앞에서 멈춰 섰던 날

by 독수리 오남매 아빠 2026. 10. 6.

퇴원 후 첫 외출, 계단과 버스 앞에서 멈춰 섰던 날

퇴원하고 두 주쯤 지난 어느 아침, 저는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복도를 몇 바퀴씩 걸었는데, 집 밖으로 한 걸음 나서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어요. 아파트 입구 계단과 동네 버스 정류장, 그 두 곳에서 저는 몇 번이나 멈춰 섰습니다. 그날 무엇이 무서웠고 무엇이 도움이 됐는지 적어 두면, 같은 문 앞에 선 분들께 조금은 덜 막막할 것 같아 이 기록을 나눕니다.

병원 복도와 바깥은 달랐습니다

병원 바닥은 평평하고 곳곳에 손잡이가 있었습니다. 넘어질 것 같으면 치료사 선생님 손이 바로 옆에 있었고요. 그런데 집 밖은 보도블록이 들쭉날쭉하고 사람과 자전거가 제 속도로 지나갔습니다. 오른쪽 다리에 힘이 덜 들어가는 저에게 바깥은 온통 변수였습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왼손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외출 목표는 딱 하나로 정했습니다

아내와 의논해서 첫 외출은 정류장 세 곳 떨어진 재래시장까지 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장을 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계단과 버스를 한 번 겪어 보는 게 목적이었어요. 욕심을 내면 중간에 지칠 것 같아 딱 그것 하나만 정했습니다. 돌아와서 쓰러지듯 눕지 않을 만큼만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은 같이 가겠다고 졸랐지만, 이번만은 엄마 아빠 둘이 다녀오겠다고 달랬습니다.

나가기 전날 치료사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나가기 전날 치료사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퇴원 후 첫 외출

외래 재활 시간에 선생님께 계단과 버스 오르내리는 연습을 부탁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치료실 계단에서 제 발 순서와 지팡이 위치를 몇 번이고 다시 잡아 주셨어요. 버스 계단 높이를 흉내 낸 발판도 올라가 봤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이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그날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처음 외출은 사람이 적은 시간에, 꼭 누군가와 함께 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어요.

현관문 앞에서 신발 끈을 세 번 묶었습니다

막상 아침이 되니 손이 떨렸습니다. 왼손으로만 신발 끈을 묶다 보니 자꾸 풀려서 세 번이나 다시 묶었어요. 결국 아내가 찍찍이 운동화를 꺼내 줬습니다. 뒤꿈치를 잘 잡아 주는 신발 하나가 그날 제 발을 지켜 줬습니다. 지팡이 끝 고무가 닳지 않았는지도 그날 아침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계단 다섯 칸이 절벽 같았습니다

우리 동 입구에는 계단이 다섯 칸 있습니다. 매일 아이들 손을 잡고 뛰어 내려가던 계단이었는데, 그날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발이 얼어붙었어요. 손잡이는 오른쪽에 있었고, 제 오른손은 그걸 꽉 쥘 힘이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참 숨만 골랐습니다. 옆으로 지나가던 이웃 어르신이 괜찮냐고 물으셨는데,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어요.

올라갈 땐 왼발, 내려갈 땐 오른발

올라갈 땐 왼발, 내려갈 땐 오른발, 퇴원 후 첫 외출

선생님이 알려 준 순서를 속으로 외웠습니다. 올라갈 때는 힘 있는 왼발이 먼저, 내려갈 때는 약한 오른발과 지팡이가 먼저라는 규칙이었어요. 저는 몸을 돌려 왼손으로 난간을 잡을 수 있는 쪽으로 섰습니다. 한 칸 내려갈 때마다 두 발을 모두 같은 칸에 모은 뒤 다음 칸으로 갔습니다. 다섯 칸을 내려오는 데 일 분이 넘게 걸렸지만, 마지막 칸에서 두 발이 땅에 닿았을 때 저도 모르게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아내는 한 칸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내려갈 때 아내는 제 앞쪽, 한 칸 아래에서 오른쪽을 지켜 줬습니다. 넘어지면 앞으로 쏠린다는 걸 선생님께 듣고 둘이 미리 정해 둔 자리였어요. 아내는 손을 잡지 않고 제 허리 옆에 손만 대고 있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내려가는 걸 기다려 주는 그 거리가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아내도 그 몇 칸 동안 숨을 참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보도블록 틈에서 배운 것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오른쪽 발끝이 보도블록 틈에 두 번 걸렸습니다. 발목이 아래로 처지다 보니 발끝을 충분히 들어 올리지 못한 거예요. 그 뒤로는 시선을 발밑 두세 걸음 앞에 두고, 오른쪽 무릎을 의식적으로 조금 더 들었습니다. 느려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걷다가 옆에서 누가 말을 걸면 대답하느라 발밑을 놓치기 쉬워서, 걸을 때는 걷는 것만 하기로 했어요.

정류장 의자에 먼저 앉았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습니다. 고작 몇 분 걸었는데 등에 땀이 배어 있었어요. 아내가 버스 도착 안내 앱으로 저상버스가 오는 시간을 확인해 줬습니다. 계단 있는 버스는 두 대를 그냥 보냈습니다. 급하게 오른 버스에서 허둥대는 것보다 한 대 더 기다리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저상버스가 들어오던 순간

저상버스가 들어오던 순간, 퇴원 후 첫 외출

바닥이 낮은 버스가 들어오자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뒤에 사람들이 줄 서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그런데 기사님이 차체를 한쪽으로 살짝 낮춰 주시고 천천히 타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풀렸습니다. 저는 지팡이를 먼저 버스 바닥에 짚고, 왼발부터 천천히 올라섰습니다.

카드 찍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왼손에 지팡이, 난간, 교통카드를 한꺼번에 쥘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드를 목걸이 지갑에 넣어 가슴 앞에 걸고 몸을 단말기 쪽으로 기울여 찍었어요. 이건 아내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작은 준비 하나가 뒤에 선 사람들 앞에서의 초조함을 많이 덜어 줬습니다. 내릴 때도 미리 카드를 꺼내 들 필요가 없으니 손이 한결 자유로웠습니다.

자리에 앉기 전까지가 제일 위험했습니다

버스가 출발할 때 몸이 뒤로 확 쏠렸습니다. 다행히 문 가까운 교통약자석이 비어 있어서 바로 앉을 수 있었어요. 그 뒤로 저는 버스를 타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사님께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부끄러움보다 안전이 먼저라는 걸 그날 몸으로 배웠습니다. 내릴 때도 버스가 완전히 멈춘 걸 확인한 뒤에 일어났습니다.

이런 신호엔 바로 외출을 멈추세요

밖에서 갑자기 한쪽 팔다리 힘이 더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면 바로 119에 연락해야 합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거나 눈앞이 흐려질 때,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지러움이 심하면 그 자리에 앉아 쉬고, 나아지지 않으면 진료를 받으세요. 저는 외출할 때 복용 중인 약 목록과 병원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지갑에 넣어 다닙니다.

시장 입구에서 돌아섰습니다

시장 입구에서 돌아섰습니다, 퇴원 후 첫 외출

세 정거장을 지나 시장 앞에 내렸을 때, 저는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아내가 들어가 볼지 물었지만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목표는 버스를 타 보는 것이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붕어빵 한 봉지만 사서 돌아오는 버스를 탔습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제 팔짱을 끼고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어요.

돌아오는 계단은 올라가는 쪽이었습니다

집 앞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계단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올라갈 때는 힘 있는 왼발이 먼저라는 규칙 덕분에 내려올 때보다는 마음이 조금 편했어요. 왼손으로 난간을 잡고 왼발을 올린 뒤, 지팡이와 오른발을 같은 칸에 모았습니다. 아내는 이번에는 한 칸 아래, 제 뒤쪽에 서서 지켜봤습니다. 다섯 칸을 다 올라와 현관 앞에 서자 아침에 떨던 손이 떠올라 웃음이 났습니다.

집에 와서 두 시간을 잤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아이들이 붕어빵 봉지에 달려드는 소리를 들으며 저는 그대로 잠들었어요. 몸은 무거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계단 다섯 칸과 버스 한 번을 해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저녁에 막내가 아빠 오늘 버스 탔어, 하고 형들에게 자랑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다음 외출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다음 외출은 조금 달랐습니다, 퇴원 후 첫 외출

두 번째 외출 때는 손잡이가 왼쪽에 오는 다른 출입구를 이용했습니다. 버스 시간표를 미리 보고 사람이 적은 오전 시간을 골랐어요. 세 번째에는 시장 안까지 들어가 두부 한 모를 직접 샀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늘려 가는 방식이 제게는 맞았습니다. 두부 봉지를 왼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이 이상하게 뿌듯했습니다.

외출 가방은 가볍게 쌌습니다

두 번째 외출부터는 가방을 따로 챙겼습니다. 한 손은 지팡이를 쥐어야 하니 양손이 자유로운 작은 크로스백을 골랐어요. 안에는 물 한 병, 약 목록 쪽지, 휴대전화, 얇은 겉옷만 넣었습니다. 무거운 가방은 몸을 한쪽으로 기울게 해서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걸 첫날 알았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도 연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지금은 필요할 때 문 좀 잡아 주시겠어요, 하고 먼저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도와줬어요. 도움을 받는 것도 재활의 한 부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도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어요.

마치며

퇴원 후 첫 외출은 거창한 나들이가 아니라 계단 다섯 칸과 버스 한 번이었습니다. 그 작은 거리가 저에게는 병원 밖 세상으로 다시 나가는 문이었어요. 혹시 지금 현관 앞에서 망설이고 계신다면, 목표를 아주 작게 잡고 곁에 한 사람과 함께 나가 보시길 권합니다.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도 괜찮습니다.

확인처: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국민건강보험공단 (제도와 수치는 해마다 바뀌니 신청 전 최신 안내를 확인하세요)

※ 이 글은 저의 경험이며 진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계단 오르내리기와 외출 방법은 상태에 따라 다르니 담당 의료진이나 재활치료사와 상담을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