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원하고 두 주쯤 지난 어느 아침, 저는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복도를 몇 바퀴씩 걸었는데, 집 밖으로 한 걸음 나서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어요. 아파트 입구 계단과 동네 버스 정류장, 그 두 곳에서 저는 몇 번이나 멈춰 섰습니다. 그날 무엇이 무서웠고 무엇이 도움이 됐는지 적어 두면, 같은 문 앞에 선 분들께 조금은 덜 막막할 것 같아 이 기록을 나눕니다.
병원 복도와 바깥은 달랐습니다
병원 바닥은 평평하고 곳곳에 손잡이가 있었습니다. 넘어질 것 같으면 치료사 선생님 손이 바로 옆에 있었고요. 그런데 집 밖은 보도블록이 들쭉날쭉하고 사람과 자전거가 제 속도로 지나갔습니다. 오른쪽 다리에 힘이 덜 들어가는 저에게 바깥은 온통 변수였습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왼손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외출 목표는 딱 하나로 정했습니다
아내와 의논해서 첫 외출은 정류장 세 곳 떨어진 재래시장까지 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장을 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계단과 버스를 한 번 겪어 보는 게 목적이었어요. 욕심을 내면 중간에 지칠 것 같아 딱 그것 하나만 정했습니다. 돌아와서 쓰러지듯 눕지 않을 만큼만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은 같이 가겠다고 졸랐지만, 이번만은 엄마 아빠 둘이 다녀오겠다고 달랬습니다.
나가기 전날 치료사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외래 재활 시간에 선생님께 계단과 버스 오르내리는 연습을 부탁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치료실 계단에서 제 발 순서와 지팡이 위치를 몇 번이고 다시 잡아 주셨어요. 버스 계단 높이를 흉내 낸 발판도 올라가 봤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이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그날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처음 외출은 사람이 적은 시간에, 꼭 누군가와 함께 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어요.
현관문 앞에서 신발 끈을 세 번 묶었습니다
막상 아침이 되니 손이 떨렸습니다. 왼손으로만 신발 끈을 묶다 보니 자꾸 풀려서 세 번이나 다시 묶었어요. 결국 아내가 찍찍이 운동화를 꺼내 줬습니다. 뒤꿈치를 잘 잡아 주는 신발 하나가 그날 제 발을 지켜 줬습니다. 지팡이 끝 고무가 닳지 않았는지도 그날 아침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계단 다섯 칸이 절벽 같았습니다
우리 동 입구에는 계단이 다섯 칸 있습니다. 매일 아이들 손을 잡고 뛰어 내려가던 계단이었는데, 그날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발이 얼어붙었어요. 손잡이는 오른쪽에 있었고, 제 오른손은 그걸 꽉 쥘 힘이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참 숨만 골랐습니다. 옆으로 지나가던 이웃 어르신이 괜찮냐고 물으셨는데,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어요.
올라갈 땐 왼발, 내려갈 땐 오른발

선생님이 알려 준 순서를 속으로 외웠습니다. 올라갈 때는 힘 있는 왼발이 먼저, 내려갈 때는 약한 오른발과 지팡이가 먼저라는 규칙이었어요. 저는 몸을 돌려 왼손으로 난간을 잡을 수 있는 쪽으로 섰습니다. 한 칸 내려갈 때마다 두 발을 모두 같은 칸에 모은 뒤 다음 칸으로 갔습니다. 다섯 칸을 내려오는 데 일 분이 넘게 걸렸지만, 마지막 칸에서 두 발이 땅에 닿았을 때 저도 모르게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아내는 한 칸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내려갈 때 아내는 제 앞쪽, 한 칸 아래에서 오른쪽을 지켜 줬습니다. 넘어지면 앞으로 쏠린다는 걸 선생님께 듣고 둘이 미리 정해 둔 자리였어요. 아내는 손을 잡지 않고 제 허리 옆에 손만 대고 있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내려가는 걸 기다려 주는 그 거리가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아내도 그 몇 칸 동안 숨을 참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보도블록 틈에서 배운 것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오른쪽 발끝이 보도블록 틈에 두 번 걸렸습니다. 발목이 아래로 처지다 보니 발끝을 충분히 들어 올리지 못한 거예요. 그 뒤로는 시선을 발밑 두세 걸음 앞에 두고, 오른쪽 무릎을 의식적으로 조금 더 들었습니다. 느려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걷다가 옆에서 누가 말을 걸면 대답하느라 발밑을 놓치기 쉬워서, 걸을 때는 걷는 것만 하기로 했어요.
정류장 의자에 먼저 앉았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습니다. 고작 몇 분 걸었는데 등에 땀이 배어 있었어요. 아내가 버스 도착 안내 앱으로 저상버스가 오는 시간을 확인해 줬습니다. 계단 있는 버스는 두 대를 그냥 보냈습니다. 급하게 오른 버스에서 허둥대는 것보다 한 대 더 기다리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저상버스가 들어오던 순간

바닥이 낮은 버스가 들어오자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뒤에 사람들이 줄 서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그런데 기사님이 차체를 한쪽으로 살짝 낮춰 주시고 천천히 타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풀렸습니다. 저는 지팡이를 먼저 버스 바닥에 짚고, 왼발부터 천천히 올라섰습니다.
카드 찍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왼손에 지팡이, 난간, 교통카드를 한꺼번에 쥘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드를 목걸이 지갑에 넣어 가슴 앞에 걸고 몸을 단말기 쪽으로 기울여 찍었어요. 이건 아내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작은 준비 하나가 뒤에 선 사람들 앞에서의 초조함을 많이 덜어 줬습니다. 내릴 때도 미리 카드를 꺼내 들 필요가 없으니 손이 한결 자유로웠습니다.
자리에 앉기 전까지가 제일 위험했습니다
버스가 출발할 때 몸이 뒤로 확 쏠렸습니다. 다행히 문 가까운 교통약자석이 비어 있어서 바로 앉을 수 있었어요. 그 뒤로 저는 버스를 타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사님께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부끄러움보다 안전이 먼저라는 걸 그날 몸으로 배웠습니다. 내릴 때도 버스가 완전히 멈춘 걸 확인한 뒤에 일어났습니다.
이런 신호엔 바로 외출을 멈추세요
밖에서 갑자기 한쪽 팔다리 힘이 더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면 바로 119에 연락해야 합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거나 눈앞이 흐려질 때,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지러움이 심하면 그 자리에 앉아 쉬고, 나아지지 않으면 진료를 받으세요. 저는 외출할 때 복용 중인 약 목록과 병원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지갑에 넣어 다닙니다.
시장 입구에서 돌아섰습니다

세 정거장을 지나 시장 앞에 내렸을 때, 저는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아내가 들어가 볼지 물었지만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목표는 버스를 타 보는 것이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붕어빵 한 봉지만 사서 돌아오는 버스를 탔습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제 팔짱을 끼고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어요.
돌아오는 계단은 올라가는 쪽이었습니다
집 앞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계단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올라갈 때는 힘 있는 왼발이 먼저라는 규칙 덕분에 내려올 때보다는 마음이 조금 편했어요. 왼손으로 난간을 잡고 왼발을 올린 뒤, 지팡이와 오른발을 같은 칸에 모았습니다. 아내는 이번에는 한 칸 아래, 제 뒤쪽에 서서 지켜봤습니다. 다섯 칸을 다 올라와 현관 앞에 서자 아침에 떨던 손이 떠올라 웃음이 났습니다.
집에 와서 두 시간을 잤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아이들이 붕어빵 봉지에 달려드는 소리를 들으며 저는 그대로 잠들었어요. 몸은 무거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계단 다섯 칸과 버스 한 번을 해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저녁에 막내가 아빠 오늘 버스 탔어, 하고 형들에게 자랑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다음 외출은 조금 달랐습니다

두 번째 외출 때는 손잡이가 왼쪽에 오는 다른 출입구를 이용했습니다. 버스 시간표를 미리 보고 사람이 적은 오전 시간을 골랐어요. 세 번째에는 시장 안까지 들어가 두부 한 모를 직접 샀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늘려 가는 방식이 제게는 맞았습니다. 두부 봉지를 왼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이 이상하게 뿌듯했습니다.
외출 가방은 가볍게 쌌습니다
두 번째 외출부터는 가방을 따로 챙겼습니다. 한 손은 지팡이를 쥐어야 하니 양손이 자유로운 작은 크로스백을 골랐어요. 안에는 물 한 병, 약 목록 쪽지, 휴대전화, 얇은 겉옷만 넣었습니다. 무거운 가방은 몸을 한쪽으로 기울게 해서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걸 첫날 알았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도 연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지금은 필요할 때 문 좀 잡아 주시겠어요, 하고 먼저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도와줬어요. 도움을 받는 것도 재활의 한 부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도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어요.
마치며
퇴원 후 첫 외출은 거창한 나들이가 아니라 계단 다섯 칸과 버스 한 번이었습니다. 그 작은 거리가 저에게는 병원 밖 세상으로 다시 나가는 문이었어요. 혹시 지금 현관 앞에서 망설이고 계신다면, 목표를 아주 작게 잡고 곁에 한 사람과 함께 나가 보시길 권합니다.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도 괜찮습니다.
확인처: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국민건강보험공단 (제도와 수치는 해마다 바뀌니 신청 전 최신 안내를 확인하세요)
※ 이 글은 저의 경험이며 진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계단 오르내리기와 외출 방법은 상태에 따라 다르니 담당 의료진이나 재활치료사와 상담을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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