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 초반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저는 평생 써 온 오른손이 제 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숟가락을 들려고 해도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고, 아내가 떠 주는 밥을 받아먹으며 다섯 아이 얼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오른손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별개로, 당장 오늘의 밥과 서명은 왼손으로 해내야 했습니다. 이 글은 오른손잡이였던 제가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쓰기까지 연습한 기록입니다. 같은 자리에 계신 분과 가족께 작은 참고가 되었으면 해서 나눕니다.
오른손잡이였던 제가 마주한 첫 식사
병원에서 처음으로 혼자 먹어 보라며 식판을 받았을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왼손으로 숟가락을 쥐었는데 손 모양부터 어색해서 어디에 힘을 줘야 할지 몰랐습니다. 국을 떠서 입까지 가져오는 사이 절반이 쏟아졌고, 환자복 앞섶이 금세 젖었습니다. 그날 저는 밥을 반도 못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배가 고픈 것보다 스스로가 낯설다는 느낌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왼손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
처음에는 오른손을 포기하는 것 같아 왼손 연습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업치료 선생님이 오른손 재활은 재활대로 하고, 일상은 왼손으로 먼저 되찾자고 하셨어요. 밥 한 끼를 남의 손에 맡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제 마음이 더 작아진다는 걸 저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나란히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숟가락이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습니다

왼손으로 숟가락을 쥐면 손목이 금방 뻐근해졌습니다. 오른손이었다면 생각도 안 했을 각도가 매번 틀어져서 밥알이 옆으로 떨어졌어요. 선생님은 손잡이가 굵은 숟가락으로 바꿔 보자고 하셨고, 손에 쥐는 느낌이 훨씬 안정적이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한 끼를 먹는 데 사십 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릇을 붙잡아 주는 작은 도구들

한 손으로 먹다 보니 가장 큰 문제는 그릇이 자꾸 밀려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른손이 그릇을 잡아 주지 못하니 숟가락으로 뜰 때마다 그릇이 식탁 위를 미끄러졌어요. 아내가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아 주고, 가장자리가 높은 오목한 그릇을 구해 왔습니다. 그 두 가지만으로 쏟는 양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도구를 쓰는 게 지는 것 같았던 마음도 그때 조금 내려놓았습니다.
밥상 위의 작은 규칙
집에 돌아와서는 식탁에서 제 자리를 정했습니다. 왼손을 쓰기 편하도록 반찬을 제 왼쪽 앞에 모아 두고, 국은 조금 식혀서 반만 담았어요. 아이들이 도와주겠다고 손을 뻗을 때도 있었지만, 아내가 아빠가 먼저 해 보게 기다리자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기다림 덕분에 제가 끝까지 해 보는 날이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웃어 주었습니다
막내가 제 옆에서 왼손으로 밥을 먹어 보겠다며 따라 한 날이 있었습니다. 둘 다 밥알을 잔뜩 흘리고는 서로 얼굴을 보며 한참 웃었어요. 그 웃음이 저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다는 게 참 고마웠습니다. 그날 이후 흘리는 것에 덜 예민해졌고, 식사 시간이 연습이 아니라 다시 가족 시간이 되었습니다.
젓가락은 집게 젓가락부터

숟가락이 익숙해질 무렵 젓가락에 도전했는데, 왼손으로는 두 짝을 따로 움직이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두 짝이 위쪽에서 이어진 연습용 집게 젓가락으로 시작했어요. 두부나 큼직한 반찬부터 집어 보고, 콩처럼 작은 것은 한참 뒤로 미뤘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일반 젓가락으로 김치 한 조각을 집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첫째가 박수를 쳐 줘서 괜히 쑥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밖에서 먹는 밥은 또 달랐습니다
집에서는 제법 익숙해졌는데, 처음 가족과 식당에 갔을 때는 다시 긴장이 되었습니다. 식당 그릇은 가볍고 미끄러웠고, 옆 테이블 시선도 자꾸 신경이 쓰였어요. 그래서 작은 미끄럼 방지 패드를 가방에 넣어 다니고, 자리는 왼손이 벽 쪽이 아닌 통로 쪽이 되게 앉았습니다. 뼈 있는 생선이나 큰 고기는 아내가 미리 잘라 주는 것으로 서로 편하게 약속했습니다. 몇 번 다녀 보니 남들은 생각보다 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밥 먹기 연습이 다른 일로 이어졌습니다
왼손으로 숟가락질이 조금 되자, 양치질과 머리 빗기도 왼손으로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칫솔도 손잡이를 굵게 감아 쓰니 한결 편했어요. 손에 쥐고 입까지 가져가는 움직임이 숟가락질과 비슷해서인지 생각보다 빨리 익었습니다. 작은 성공이 쌓이자 다음 도전이 덜 무서워졌습니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왼손으로 머리를 빗는 일이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이 되었습니다.
오른손 연습도 놓지 않았습니다
왼손을 쓰는 동안에도 오른손 재활은 따로 계속했습니다. 오른손을 식탁 위에 올려 두고 그릇 가장자리를 가볍게 누르게 하는 식으로, 식사 자리에서도 오른손이 할 일을 조금씩 주었어요. 치료 선생님은 쓰지 않는 손을 완전히 내려놓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하셨습니다. 왼손이 일상을 맡고, 오른손은 회복을 맡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정리되었습니다.
이런 신호엔 바로 병원에 갔습니다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기 쉽습니다. 저는 평소보다 오른쪽 힘이 갑자기 더 빠지거나, 말이 꼬이거나, 머리가 심하게 아프면 연습을 멈추고 바로 병원에 연락하기로 가족과 약속했습니다. 밥을 먹다 자주 사레가 들리거나 기침이 계속될 때도 그냥 넘기지 않고 진료를 받았어요. 연습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안전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글씨는 또 다른 산이었습니다
밥은 흘려도 먹으면 그만이지만, 글씨는 남들이 알아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처음 왼손으로 제 이름을 썼을 때, 삐뚤빼뚤한 획이 꼭 아이 낙서 같았어요. 은행이며 주민센터 서류에 서명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그래서 글씨 연습을 따로 시간을 정해 시작했습니다.
선 긋기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글자보다 선부터 긋자고 하셨습니다. 굵은 펜으로 가로선, 세로선, 동그라미를 공책 한 장씩 채웠어요.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면 금방 손목이 저려서, 펜을 가볍게 쥐는 연습도 함께 했습니다. 몇 주 동안은 선만 긋는 게 지루했지만, 선이 곧아지는 게 눈에 보이니 할 만했습니다. 셋째가 쓰던 받아쓰기 공책의 큰 칸이 연습하기에 딱 맞았습니다.
자음과 모음, 그리고 제 이름
선이 어느 정도 곧아지자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썼습니다. 기역과 니은처럼 꺾이는 획은 왼손으로 쓰면 방향이 거꾸로 느껴져 한참 헤맸어요. 모음은 쉬울 줄 알았는데 짧은 획의 길이를 맞추는 게 의외로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한 글자씩 쌓아 올려 마지막에 제 이름 세 글자를 연습했습니다. 이름이 처음 반듯하게 한 줄로 서던 날, 공책을 아내에게 몇 번이나 보여 줬습니다.
종이를 붙잡는 요령
한 손으로 글씨를 쓰니 종이가 펜을 따라 자꾸 밀려났습니다. 공책 밑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거나, 무거운 책을 종이 위쪽에 올려 두니 한결 나았어요. 왼손잡이는 쓰는 방향이 손에 가려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종이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이니 방금 쓴 글자가 보여서 획을 이어 가기가 쉬워졌습니다.
하루 십오 분의 약속
저는 저녁 식사 뒤 십오 분을 글씨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욕심을 내서 한 시간씩 하면 다음 날 손목이 아파 오히려 쉬게 되더라고요. 날짜를 적고 그날 쓴 줄을 사진으로 남겨 두니, 한 달 뒤 비교할 때 차이가 분명히 보였습니다. 그 사진첩이 제게는 가장 확실한 응원이었습니다. 손목이 시큰한 날은 과감히 쉬고, 다음 날 다시 공책을 폈습니다.
아이 가정통신문에 이름을 썼던 날

어느 아침, 둘째가 학교에 내야 할 가정통신문을 내밀며 아빠가 써 달라고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내에게 넘겼을 텐데, 그날은 제가 왼손으로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어요. 둘째가 들여다보더니 아빠 글씨 이제 읽을 수 있다며 웃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목이 메어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느리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기
연습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손이 아니라 제 마음이었습니다. 예전 속도와 비교하면 모든 게 한없이 느렸고, 그 생각이 들면 연습할 마음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비교 대상을 예전의 제가 아니라 지난달의 저로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보니 어제보다 나은 부분이 매번 조금씩은 있었습니다. 아내도 제가 풀이 죽어 있으면 지난달 사진첩을 슬쩍 펼쳐 보여 주곤 했습니다.
마치며
지금도 제 왼손 글씨는 반듯하지 않고, 젓가락질도 가끔 헛손질을 합니다. 그래도 가족과 같은 식탁에서 제 손으로 밥을 먹고, 아이들 서류에 제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한 손을 잃은 것 같아 막막하신 분이 계시다면, 숟가락 하나와 선 한 줄부터 시작해 보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루씩 쌓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확인처: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국민건강보험공단 (제도와 수치는 해마다 바뀌니 신청 전 최신 안내를 확인하세요)
※ 이 글은 저의 경험이며 진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연습 방법과 보조 도구는 담당 재활의학과 의료진이나 작업치료사와 상담을 받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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