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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운동

뇌출혈 편마비 아빠가 아이들 앞에서 넘어진 날, 가족과 재활을 나누다

by 독수리 오남매 아빠 2026. 10. 17.

핵심 요약 마흔에 뇌출혈로 오른쪽 편마비가 온 뒤, 아이들 앞에서만은 괜찮은 아빠이고 싶어 넘어질 뻔한 순간을 숨겼습니다. 그러다 다섯 아이 앞에서 넘어진 날 이후, 우리 집 재활은 가족 모두의 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넘어진 날, 가족과 재활을 나누게 된 이야기

마흔 초반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오른쪽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몇 달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괜찮은 아빠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힘든 운동도, 넘어질 뻔한 순간도 아이들이 없을 때만 조용히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감추던 모습을 어느 날 다섯 아이 앞에서 한꺼번에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 집 재활은 저 혼자의 일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일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싶어 그날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습니다

퇴원하고 처음 몇 주 동안 저는 아이들에게 늘 웃는 얼굴만 보여 주려 했습니다. 걷기 연습은 아이들이 학교에 간 오전에 몰아서 했고, 저녁에는 소파에 앉아 되도록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이제 다 나은 거냐고 물으면 거의 다 나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대답이 저 스스로를 가장 지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거실 한가운데서 넘어졌습니다

거실 한가운데서 넘어졌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넘어진 날

그날은 일요일 저녁이었고 다섯 아이가 모두 거실에 있었습니다.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가려고 일어섰는데, 바닥에 굴러다니던 장난감 자동차를 오른발이 미처 피하지 못했습니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우는 순간 손을 짚으려 했지만 오른손은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거실 바닥에 옆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순간 거실이 조용해졌습니다

텔레비전 소리만 남고 아이들의 말소리가 한꺼번에 멈췄습니다. 바닥에 닿은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그보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더 아팠습니다. 첫째는 벌떡 일어나 제 쪽으로 달려왔고, 둘째와 셋째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습니다. 저는 괜찮다는 말부터 꺼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그 짧은 몇 초가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막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막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넘어진 날

가장 어린 막내는 문 뒤에 반쯤 숨어 저를 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빠가 또 병원에 가는 거냐고, 또 집에 없는 거냐고 물으며 울었습니다. 제가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가던 날을 막내도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감추려 했던 것이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더 큰 두려움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첫째가 제 팔을 잡아당겼습니다

첫째는 저를 일으키려고 마비된 오른팔을 붙잡고 힘껏 당겼습니다. 어깨가 빠질 듯이 아파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고, 놀란 첫째는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돕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던 겁니다. 부엌에 있던 아내가 달려와서야 저는 왼쪽으로 돌아누워 천천히 몸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편마비 환자가 넘어졌을 때, 이런 신호엔 바로 병원

다행히 그날 저는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고 어깨 통증도 다음 날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재활병원에서 들은 대로, 넘어진 뒤 머리를 부딪쳤거나 두통이 점점 심해지거나 토하는 경우, 평소보다 말이 어눌하거나 마비가 심해진 느낌이 들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합니다. 뼈가 부러진 것 같은 심한 통증이 있거나 혈액을 묽게 하는 약을 먹는 중이라면 더더욱 서둘러야 합니다. 그날 밤 아내와 저는 이 목록을 종이에 적어 냉장고에 붙였습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에도 저는 한참을 뒤척였습니다. 넘어진 것보다 아이들이 제 넘어지는 모습을 봤다는 사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내는 제 옆에 누워 아이들도 이제 알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숨기는 게 아이들을 지키는 거라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첫째에게 먼저 고맙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첫째는 제 눈치를 보며 어깨는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아빠를 아프게 했다는 생각에 밤새 마음이 무거웠던 모양입니다. 저는 첫째를 옆에 앉히고 제일 먼저 달려와 줘서 고마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오른팔은 아빠가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곳이라 당기면 다칠 수 있다고 천천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털어놓은 이야기

식탁에 둘러앉아 털어놓은 이야기, 아이들 앞에서 넘어진 날

다음 날 저녁, 우리 일곱 식구는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오른쪽 몸이 아직 많이 아프고, 앞으로도 가끔 넘어질 수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대신 매일 운동을 하고 있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차분하게 들었고, 셋째는 아빠도 무서웠냐고 물었습니다.

아빠도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잠깐 망설이다가 무섭다고 대답했습니다. 넘어질까 봐 무섭고, 너희랑 예전처럼 뛰어놀지 못할까 봐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하자 목이 메었지만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가벼워졌습니다. 둘째가 우리도 무서웠다고 말하며 제 왼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넘어졌을 때 가족이 할 일을 정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아빠가 넘어졌을 때 무엇을 할지 함께 정했습니다. 첫째, 아빠 오른팔은 절대 당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둘째, 먼저 아빠에게 어디 아픈 데가 없는지 묻고 엄마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셋째, 아빠가 머리를 부딪쳤거나 대답이 이상하면 바로 엄마 휴대폰으로 119에 전화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역할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에게 역할이 생겼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넘어진 날

아이들은 각자 맡을 일을 스스로 정했습니다. 첫째는 엄마를 부르는 일, 둘째는 튼튼한 의자를 아빠 옆으로 가져오는 일을 맡았습니다. 셋째와 넷째는 거실 바닥의 장난감을 치우는 담당이 되었고, 막내는 아빠 지팡이를 가져다주는 일을 맡았습니다. 역할이 생기자 아이들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조금씩 걷히는 게 보였습니다. 막내는 지팡이를 제 왼손에 쥐여 주며 이제 아빠 안 넘어지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거실 바닥이 달라졌습니다

그 주말 아이들과 함께 집 안을 한 바퀴 돌며 걸려 넘어질 만한 것들을 찾았습니다. 장난감 바구니는 벽 쪽으로 옮기고, 들뜬 러그는 치우고, 밤에 켜 둘 작은 조명도 복도에 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여기도 위험하다며 서로 먼저 찾아냈습니다. 아빠를 위한 일이 어느새 가족 놀이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치료사에게 배운 방법을 보여 주었습니다

다음 외래 재활 때 치료사에게 넘어진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치료사는 가족이 억지로 일으키기보다 먼저 괜찮은지 확인하고, 튼튼한 의자를 옆에 두어 제가 짚고 스스로 일어나는 편이 안전하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 앞에서 그 방법을 천천히 보여 주었습니다. 아빠가 혼자 일어나는 모습을 처음 본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박수를 쳤습니다.

운동을 숨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걷기 연습을 아이들이 있는 저녁 시간에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앞에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가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박수를 치며 숫자를 세어 주었습니다. 누군가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덜 외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흘리는 땀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막내와 함께하는 저녁 걷기

막내와 함께하는 저녁 걷기, 아이들 앞에서 넘어진 날

요즘은 저녁을 먹고 나면 막내와 아파트 복도를 천천히 걷습니다. 막내는 제 왼쪽에 서서 아빠 오늘은 몇 걸음 할 거냐고 묻습니다. 어제보다 열 걸음을 더 걸은 날이면 막내는 엄마에게 달려가 자랑을 합니다. 그 작은 목소리가 저에게는 어떤 응원보다 큰 힘이 됩니다.

아내의 짐도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예전에는 제 재활과 다섯 아이 돌봄이 모두 아내 한 사람 몫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함께 알게 되면서 아내가 혼자 짊어지던 걱정도 조금 나누어졌습니다. 아내는 요즘 아이들이 아빠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고 말합니다. 우리 부부는 무엇이든 혼자 감당하지 않기로 다시 약속했습니다. 가끔은 아이들이 엄마에게 오늘은 우리가 아빠를 볼 테니 좀 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누고 나서 달라진 것

넘어진 그날이 없었다면 저는 아직도 아이들 앞에서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약한 모습을 보여도 아빠는 여전히 아빠라는 걸 아이들이 먼저 알려 주었습니다. 재활은 몸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족과 마음을 맞춰 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요즘 저는 넘어지는 것보다 혼자 버티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혹시 지금 가족 앞에서 애써 괜찮은 척하고 계신다면, 아이들 나이에 맞는 말로 조금씩 나누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넘어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미리 정해 두면 가족 모두의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아이들에게 작은 역할을 맡기면 걱정이 행동으로 바뀌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독수리 오남매와 함께 한 걸음씩 걸어 보겠습니다.
※ 이 글은 저의 경험이며 진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넘어진 뒤 이상 증상이 있으면 바로 의료진의 진료를 받으세요.